결혼식답례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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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의 영토’라는 말만 들어도 내겐 늘 아련한 추억과 더불어 애틋한 그리움과 설렘이 밀려온다. 1976년 2월에 초판이 나왔으니 나의 첫 시집인 이 책이 빛을 본 지도 49년이 되어 내년이면 어느새 출간 반세기를 기념하게 된다. 얼마 전 아주 오랜만에 박두진 시인의 댁에 가서 사모님을 뵈니 “그 옛날 우리 집에 와서 선생님과 담소하며 밥도 먹고 그랬는데 나도 이리 휠체어에 앉아 있고 그토록 젊고 예쁘던 수녀님도 이젠 나이가 많이 드셨네요” 하셨다.

34편의 짧은 시와 10편의 단상을 곁들여 펴낸 이 시집을 발간한 가톨릭출판사의 김병도 사장 신부님과 출판을 허락해 주신 당시의 관구장 임남훈 수녀님, 축하의 말을 얹어 주신 홍윤숙 시인, 그리고 시집 제목의 글씨와 발문을 써 주신 박두진 시인은 모두 세상을 떠나셨다. 박두진 시인과 퍼시 비시 셸리 시인의 시를 비교하는 논문을 쓰고 싶어 편지를 주고받은 인연으로(비록 논문은 다른 주제로 바꾸게 되었으나) 오랜 기간 대시인과 인연을 이어온 일이 내겐 영광이었다. 김병도 신부님이 백영수 화가에게 그림을 배우는 인연으로 멋진 표지 그림도 받게 되었는데, 그분도 7년 전 별세하시어 생전에 뵈올 수가 없었다.

1964년 3월에 입회한 뒤 1968년 5월에 첫 서원을 한 나는 필리핀에 유학을 다녀오느라 동기들보다 2년 늦게 종신 서원을 하게 되었는데 그냥 일기를 쓰듯이 틈틈이 쓴 시들을 한 권의 두꺼운 노트에 ‘민들레의 노래’라는 제목을 붙여 간직하고 있었다. 어쩌다 한번씩 이해인이란 필명으로 가톨릭 소년지에 동시를 발표하기도 했는데, 당시의 편집장이던 검돌 이석현님(캐나다에서 2009년 별세)이 임남훈 수녀님과 같은 고향 친구라 서로 연락하던 중 수녀의 시에 대한 얘기를 좋게 했다고 한다. 음악을 전공한 수녀님은 “시인 지망생은 레슨 같은 거 안 받나? 우리가 피아노 레슨을 받듯이 말이야.” 그래서 100여편 되는 시들 중에서 10편을 뽑아 홍윤숙 시인에게 보낸 것이 계기가 되어, 나의 첫 시집은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당시의 상황을 고려할 때 두렵고 떨리는 일이라 나는 한사코 출판을 말렸더니 “시가 혼자 보긴 아깝다잖아. 내가 책임질게” 하셨다. 그래서 일단은 종신 서원 기념 시집으로 초판 1500부를 찍었는데 일부 신문에도 소개가 되면서 놀라운 반향을 일으켰다. 나중엔 출간한 것 자체를 후회할 정도로 나는 이래저래 마음고생을 많이 해야 했다. 익명성을 강조하고 겸손을 지향하는 수도자의 삶과 유명세는 자주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고 두번째 세번째 시집이 나올 때까지의 십년간은 갈등과 고민의 연속이었다. 길에서도 내 시집을 들고 있는 이들과 마주치는 게 참 신기했다. 대형 서점에서 소개하는 베스트셀러 목록에 내 시집 목록이 여러개 들어갈수록 나는 다른 문인들에게 미안해서 제발 책이 안 팔리게 해달라는 기도도 했었다. 시집을 모티브로 한 영화나 연극을 만들고 싶다는 이들도 있었고, 가출한 딸의 가방 속에 수녀의 시집이 들어 있으니 당장 딸을 찾아내라는 전화도 받았다. 그 시절 전국의 독자들이 보내온 수많은 엽서와 편지들을 나는 아직도 창고에 간직하고 있는데, 그 독자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지기도 한다.

‘여기가 바로 민들레의 영토인가요?’ 방문객들은 우리 수녀원에 와서 질문하곤 한다. 지금껏 펴낸 수십권의 저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어떤 것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서슴없이 ‘민들레의 영토’라고 대답하곤 한다.

1966년 청원기 시절의 어느 날 옥상에서 체조를 하다 발견한 좁은 돌 틈의 민들레 한 송이가 말을 걸어와 쓰게 된 시.

‘기도는 나의 음악/ 가슴 한복판에 꽂아 놓은/ 사랑은/ 단 하나의 성스러운 깃발

태초부터 나의 영토는 좁은 길이었다 해도/ 고독의 진주를 캐며/ 내가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

이 땅에서 나는 오늘도 열심히 기도하고 일하며 사람들을 만난다. 오늘의 시인 수녀를 있게 한 첫 시집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며, 30주년엔 수녀회가 가까운 지인들을 초대해 축하해 주었고, 40주년엔 출판사가 독자들을 위한 북콘서트를 열어 주었다. 아마도 50주년엔 다시 예쁘고 단정한 특별판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하얀 솜털 날리는 민들레 한 송이로 살아온 반세기를 감사하면서, 늘 가족 이상으로 따뜻한 눈길을 보내 준 독자들과 here 함께 시를 삶으로 채우려고 노력해 온 시간들을 자축하면서 하늘을 보니 새삼 흐뭇하다. ‘수도 생활의 좁은 길을 사랑으로 넓혀 주고 새롭게 확대시켜 준 민들레의 영토여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며 두 손 모으는 오늘의 행복!

‘시인이 되기 위한 시로서가 아니고 시인으로서의 시가 아닌 데에 그의 시의 일단의 순수성과 그 동기의 초월성이 있다... 그에게 있어서 시는 하나의 찬양이며 영혼의 법열 혹은 그 아픔의 고백이며 그 모두를 바로 신에게 그리스도에게 영원한 구원의 주에게 하느님에게 바치는 불사르는 향불이요 제물이요 꽃떨기요 눈물이요 무릎꿇음인 것이다.’(박두진, 1975.12) ‘이제 수도자로서의 가장 큰 기쁨인 종신 서원과 또 하나의 기쁨인 첫 시집, 그 두 개의 길에서 이중으로 그리스도를 만나는 기쁨을 향유한 이해인 수녀의 영광된 출발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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